2012년 5월 6일 일요일

이석기 김재연 남편 최호현




국가보안법 위반 '자본주의연구회' 전 회장에 징역형

[CBS 박종관 기자] 대학생 동아리 ‘자본주의연구회’를 조직해 대학 신입생을 상대로 북한 주체사상을 학습시킨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 간부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우진 부장판사)는 19일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자본주의연구회 초대 회장 최모(37) 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을 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같은 혐의로 기소유예된 전력이 있는데도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하고 대학 신입생에게 이를 주입하려 했으며 병원 진단서를 위조해 예비군 동원훈련을 연기받는 등 죄질이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김일성 회고록’ 등 이적 문건을 주로 소지 목적으로 갖고 있었고,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직접적ㆍ폭력적 행위까지는 나아가지 않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최 씨는 지난 2008년 9월부터 최근까지 의식화 학습을 위해 김일성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 등 북한의 주체사상과 선군정치 등을 미화하고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찬양하는 내용의 이적표현물 90여건을 소지한 혐의로 지난 4월 구속기소됐다.


최씨는 또 2007년 9월 연구회 회원에게 학습하라며 김일성 회고록을 나눠주고 가짜 병원 진단서를 만들어 동원훈련을 연기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김재연 남편 최호현, 국보법 위반으로 유죄판결 받아



김재연과 남편 최호현. /출처: 최호현씨 페이스북

안팎의 사퇴 요구를 6일 정면으로 거부한 김재연 통합진보당 당선자의 남편은 최호현(38·사진)씨이다.

고 대 법대를 졸업한 최호현씨는 작년 4월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최씨와 김 당선자는 2010년 3월 결혼했다. 당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조국 서울대 교수, 만화가 강풀씨 등은 트위터에서 최씨에 대한 수사와 압수수색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배우 김여진씨 또한 최씨를 격려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최씨가 '자본주의연구회'라는 단체를 조직해 2008년 9월부터 경찰 조사를 받기 전까지 의식화 학습을 위해 김일성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와 '주체사상에 대하여' 등 북한의 주체사상과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찬양하는 내용의 이적표현물 90여건을 소지했다고 밝혔다.

최씨는 2007년 9월 자본주의연구회 회원들에게 학습하라며 김일성 회고록을 나눠주고, 2008~2009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와 용산참사 관련 시위 등 불법 시위에 4차례 참가한 혐의도 받았다.

자본주의연구회가 개최한 대안 캠프에 최씨 등의 노력으로 5년 동안 1500명 이상의 대학생이 다녀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최씨 사건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검찰은 최씨 등이 대부분의 학습모임을 새벽에 진행했고, 회원을 선발하면서 사상성과 투쟁성을 평가한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최씨는 베네수엘라와 쿠바를 방문하기도 했다. 최씨는 지인들에게 "2012년 대선을 거치면 통일이 가깝게 다가올 것"이라며 "한반도에 맞는 통일 경제 체제를 창조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법 김우진 판사는 작년 8월 최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을 명했다.

김재연씨는 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의 최대계파인 경기동부연합의 지원을 받아 비례대표 후보 3번에 배정됐으며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진중권 교수는 6일 트위터에 "김재연 사퇴거부. 결국 분당으로 가는군요. 둘 중의 하나입니다. '출당' 아니면 '분당'. 저들의 적나라한 실체를 보고 계십니다“라고 글을 남겼다.

이어 그는 “아예 드러누워 배째라는 군요. 어이가 없네요. 진보를 위해, 통합을 위해 이석기 김재연 반드시 낙마시켜야 합니다"라고 김재연 후보를 비롯 '사퇴 거부'를 주장한 사람들을 향해 강하게 비판했다.

앞서 김재연 당선자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진보당 경선 투표 비리 의혹에 대해 "많은 부분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문건 하나로 불법선거 당사자로 둔갑돼 버렸다"라며 '사퇴 거부' 입장을 밝혔다.

진중권 교수는 "김재연의 기자회견은 당권파의 지시라고 봐야죠. 이석기가 해야 할 기자회견을 대신 하는 셈이죠. 이석기가 나왔다면, 계파의 실세가 비난의 표적이 되고, 반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테니까요. 일종의 완충장치랄까?"라며 파문을 축소시키려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직투표의 무서움. 당 내부의 선거는 투표율이 50%가 안 됩니다. 그러니 26%만 갖고도 당 전체를 장악할 수 있죠. 게다가 다른 계파 성원들은 성향이 개인적이라 표가 갈라집니다. 고로 조직표로 정당 하나 잡아먹는 건 쉬운 일이죠“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의혹 중심’ 당권파 핵심, 이석기는 누구?




[한겨레] 비례경선서 압도적 표차로 1위 올라

2007년 권영길 대선후보 때

광고 맡으며 당 홍보물 독점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되기도


지난 3월 실시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개표 결과 이석기 당선자가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오르자, 통합진보당 내부에서는 ‘이석기가 누구냐’는 말이 돌았다. 당 안팎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4·11 총선 운동이 시작된 첫날인 3월29일, 하태경 새누리당 당선자(당시 후보, 부산 해운대 기장을)가 그에 대해 “대법원이 반국가단체로 판결한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 출신”이라고 말하면서 한번 더 입길에 올랐다.

비주류들은 당직자들에게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석기 당선자가 경선에서 압도적인 표를 받은 것을 ‘종파 패권주의’의 대표적인 예로 든다. 그가 ‘경기동부연합’으로 불리는 주류 정파의 숨겨진 핵심이자 실세였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근거는 이석기 당선자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시엔피(CNP)전략그룹’이란 광고기획사다. 이 회사는 2007년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광고를 비롯해 당·노조, 대학 총학생회의 각종 기획·홍보물 등을 거의 독점했다고 한다. 한때 민주노동당에서 시엔피의 독점 수의계약이 문제가 돼 경쟁입찰로 바꾼 일이 있었으나, 입찰 조건에 ‘운동권 참여 경력’을 제시하라는 주문을 추가해 시엔피의 경쟁력이 훌쩍 높게 평가된 적도 있다고 한다.

비주류파에선 시엔피가 이처럼 민노당과의 계약을 통해 번 돈을 경기동부연합의 조직 관리 비용으로 썼다고 보고 있다. 시엔피가 경기동부연합이 형성한 당권파 세력과 공생했던 셈이다. 시엔피가 ‘경기동부의 자회사’, 이석기 당선자가 ‘경기동부의 숨은 실세’로 불렸던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외대 82학번인 이 당선자의 비례대표 후보 홍보 영상을 보면, 그는 실제로 민혁당 사건으로 10년여의 수배 및 수감 생활을 보냈다. 이 때문에 청년 시절 모습을 담은 사진이 한 장도 없으며, 국방부 군무원이던 누나가 강제해직 당한 일화도 소개되고 있다. 2003년 석방된 뒤 <민중의 소리>, 시엔피전략그룹, 사회동향연구소 등 경기동부연합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핵심 사업이나 재정 사업을 맡은 것이 그의 주요 이력이다. 그는 자신의 홍보물에 실은 출마의 변에서 “저는 90년대부터, 동지들과 함께 본격적인 당운동을 예비하며 당의 지역적 토대를 강화하는 한편, 각급 공직 선거에 독자 후보 전술로 도전하는 등 당운동의 초석을 다져왔다”고 밝혔다.






 종북 혁명가들에 대한 슬픈 기록 '진보의 그늘'


[서평] 통혁당-인혁당-남민전-구국전위-중부지역당-민혁당-일심회를 기록하다

 
박성국 기자 | 2012-04-04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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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의 국회의원 후보 사퇴 문제로 촉발된 당내 배후 논쟁은 초반에 경기동부연합의 실재 여부에 모아졌다. 민노당 시절부터 당권을 장악해온 실체가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공당의 배후에 주사파 조직이 있는 것 아니냐며 파장이 확산됐다. 민노당에서 경기동부연합의 존재는 사실상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경 기동부연합 논란이 촉발되자 한기홍 하태경 등 전향한 '486 NL 출신 운동가'들이 나서 통합진보당 주류의 배후는 경기동부연합이 아닌 구(舊)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재건파들을 정조준했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2번과 이의엽 선대본부장이 몸통으로 떠올랐다. 현재 당권파들 가운데 경기동부연합은 우위영 대변인이 거의 유일하며 당내 주류파인 영남과 경기동부, 전남을 연결할 조직적 맥은 구 민혁당 계열만이 구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가 통합진보당 내부 당권파의 배후에 민혁당 재건파 출신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3월 하순에 출판한 '진보의 그늘-남한의 지하혁명 조직과 북한'을 출간했기 때문이었다.  

민노당 배후 논란 이전 한 대표는 '진보의 그늘' 서문에서 "지하당 출신 가운데 자신의 이념과 국가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투명하게 밝히지 않고 공직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우리 정치가 종북의 강력한 파장 아래로 들어가고 있는 이상 '종북'의 정점에 있었던 지하혁명 조직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진보의 그늘' 출간 동기로 지난해 발생한 왕재산 간첩단 사건과 통합진보당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들었다. 북한의 대남 지하당에 연루돼 사법적 심판을 받았던 인사들이 공당에 들어가서도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해서 북한의 논리를 옹호한다면 국민들은 국가 정체성 문제에 심각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색깔론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과연 이들의 종북DNA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진보의 그늘은 민혁당뿐만 아니라 1970년대 이후 국내 종북 지하당 역사를 개괄하고 있다. 저자는 본문에서 지하당에 대한 주관적 기술을 자제하면서 자료와 증언을 통해 그 실체를 규명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공안기관의 수사기록이나 판결문, 관련자들의 일방적 진술만으로는 지하당의 본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북한이 민주화 돼 관련 자료가 공개되면 비어 있는 퍼즐의 상당부분을 꿰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혁멱당(통혁당) 사건은 그 실체에 관한 논란이 거의 없다. 김종태 등 구(舊) 좌익인사들이 북한과 연계를 맺어 활동하는 과정, 검거와 재판, 북한의 이후 활동을 기술했다. 저자는 여기서 통혁당 2인자로 사형이 집행된 김질락을 통해 1960년대 북한을 추종한 엘리트의 회환을 담담하게 기술했다.   

인민혁명당(인혁당) 및 재건위원회 사건에서는 과거 수사기관의 무리한 강압수사와 처벌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도 조직이 실재했음을 보여주는 원로 인사들의 간접 체험을 소개했다. 근래 들어 법원은 가혹행위 등으로 인해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인혁당 관련 재심에서 관련자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그렇다고 조직의 실체 자체가 부정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인혁당과 재건 조직의 성격과 규모 등 그 실체를 부분적이나마 가늠할 수 있다. 

남한민족민주전선(남민전) 사건은 창당부터 중앙위원 체포 시기까지 긴박한 스토리 전개가 특징이다. 남민전은 북한과 직접 연결을 시도하며 공작금까지 요구했지만 실제 활동은 독자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남민전 중앙위 위원들은 남로당부터 이어지는 구 좌익의 마지막 세대들과 1970년대 운동가들이 함께 망라돼 있다. 이들 가운데 현재 우리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인사도 적지 않다. 이들의 과거 활동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혁명가의 사상이 어떻게 풍화 또는 진화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1990년대 들어 발생한 구국전위와 민혁당 사건을 통해 1980년대 자생 주사파들이 북한과 연계해 활동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총책 김영환이 김일성 만난 일화와 그 만남을 계기로 역설적으로 사상적 방황을 하게된 과정도 기록하고 있다. 또한 하영옥, 이석기 등이 김영환의 해체 선언을 무시하고 당을 재건하기 위해 활동한 사실도 드러난다. 

중부지역당 사건은 남파간첩이 직접 포섭해 조직한 지하당 중 최대 규모라 할 수 있다. 이선실은 민중당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던 김낙중, 손병선, 황인오를 포섭해 이들을 중심으로 3개의 간첩망을 운영하면서 400여 명의 조직원을 모아 중부지역당을 결성했다. 이 책에서는 중부지역당 수사 직전 북한으로 도피한 이선실(남파간첩 중 최고위층)의 실체를 규명하는 과정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아사 사태가 발생하고 탈북자가 제3국을 유랑하는 삶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목도하면서도 김일성, 김정일에 충성을 맹세하며 북한 중심의 혁명을 꿈꾸는 일심회 조직원들의 일탈도 드러난다. 일심회 사건은 1980년대 주사파들이 2000년대 들어서도 북한에 대한 미망을 접지 못하고 남한 혁명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 책의 출간과 함께 통합진보당 주류의 전력 문제에 대한 논란이 더 커졌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파장과 달리 이 책을 통해 남한에서 지하혁명당의 출현과 사멸의 과정을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종북 혁명가들의 슬픈 인생사에 마음이 '훵해'지기도 한다. '진보의 그늘'은 지난한 우리 현대사의 한 부분인 지하당의 역사이자 대한민국 현실 정치에 필요한 사상적 면역제로 평가될 만하다.
 


이석기 '침묵'…김재연 "깨끗한 선거였다" 반발

진보당 운영위, 경선 비례대표 전원 사퇴 결의했지만

운영위 불참 당권파 '버티기'

유시민, 후보 동반사퇴 압박

12일 중앙위가 분수령될 듯

< 이석기 : 경기동부연합소속 2번 당선자 >

< 김재연 : 3번 당선자 >


통 합진보당 비당권파가 주도한 전국운영위원회가 비례대표 부정경선과 관련해 결정한 건 크게 세 가지다. 당 지도부의 총사퇴와 전체 비례대표 20명 중 전략공천 후보 6명을 뺀 당선자·후보자(14명)의 전원 사퇴,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이다.

이 중 지도부 총사퇴는 사실상 당권파가 요구했던 사안이고 비대위 구성은 비당권파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한 가지씩 주고받은 모양새다. 관심사는 비례대표 당선자의 사퇴 여부다. 여기서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승패가 갈린다. 특히 당권파 비례대표 당선자로 경기동부연합의 실세로 알려진 비례대표 2번 이석기 당선자와 3번인 김재연 당선자(사진)의 거취 결정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비례대표는 유시민 공동대표가 6일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했듯이 사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자진사퇴가 유일한 방법이지만 이들은 아직까진 사퇴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례대표 1번인 윤금순 당선자가 사퇴의사를 표명하며 동반사퇴를 압박했지만 당권파는 버티는 형국이다. 비례대표 사퇴는 당내 주도권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재연 당선자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깨끗한 선거를 치렀다”며 “하루아침에 부정선거 당선자가 됐다”며 운영위의 사퇴 권고안에 강력 반발했다.

지 난 5일 운영위에서도 당권파가 강력 반발한 건 이들의 사퇴 여부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의장을 맡은 이정희 공동대표가 퇴장한 후 유시민 공동대표가 의사봉을 이어받아 이들의 사퇴 권고안을 의결하려고 하자 당권파 당원들과 지지자 70여명이 실력행사를 했다.

당권파인 이 공동대표가 대표직 사퇴 및 당대표 불출마를 선언하면서도 진상조사위 결과를 부정하면서 버티기를 한 이유도 이석기 당선자를 사수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이 많다.

이 당선자는 당권파의 핵인 경기동부연합의 ‘브레인’으로 분류된다. 한국외국어대 82학번인 이 당선자는 과거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에서 지하 학생운동을 했다. 같은 학생운동권 출신인 하태경 새누리당 당선자는 최근 “그는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장 출신으로 (당시) 서열 5위 안에 드는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정희 공동대표의 여론조사 조작 사건이 일어났던 서울 관악을 여론조사를 맡은 CNP전략그룹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당권파의 사퇴권고 수용 여부에 따라 진보당의 진로가 달라질 수 있다. 당권파 일각에서는 당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결정하는 12일 중앙위원회 의결 내용을 지켜보자는 의견이 상당하다. 권고안을 거부한다면 분당이라는 최악의 사태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관계자는 “당권파가 권고안까지 무시하면 당이 쪼개질 가능성도 있다”며 “비판 여론을 생각할 때 결국 사퇴 쪽으로 결론이 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석기 지키려 화살받이 나선 이정희·우위영

[세계일보]4·11 총선 비례대표 경선 부정을 둘러싼 통합진보당의 진흙탕싸움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면서 그 중심에 자리 잡은 당권파의 ‘활약상’이 화제다.

당 권파들이 전국운영위 파행 사태까지 불러일으키며 ‘방어막’을 치고 나선 것은 전국위가 사퇴를 권고한 비례대표 2번 이석기(사진) 당선자의 국회 입성을 위해서다. 경선에서 최다 득표로 비례대표 2번을 받은 이석기 당선자는 ‘경기동부연합’ 핵심 브레인으로 오랫동안 당권파 전략을 막후에서 지휘해온 인사로 알려졌다.

그동안 앞에 나서지 않던 이 당선자가 전면에 부상한 것은 통합진보당의 18대 대선 전략과 맞닿아 있다. 통합진보당은 총선에서처럼 연말 대선에서도 민주통합당과 연대해 대선 정국에 참여하고 차기 정권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이런 밑그림 아래 이 당선자가 가진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해 당권파는 사생결단식으로 비당권파와 대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국운영위원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사람은 당권파인 이정희 공동대표였지만 우위영 대변인의 역할도 컸다. 같은 당권파인 우 대변인은 이 대표로부터 발언권을 계속 얻어 같은 발언을 반복해 회의를 지연시켰다. 우 대변인은 특히 조사위의 보고서를 ‘누더기, 진상조작 보고서’로 깎아내렸고, 비례 사퇴 요구에 대해선 ‘쿠데타’라고 주장해 비당권파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그는 또 조사위가 가장 많이 득표한 후보의 투표 샘플을 통한 대리투표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다른(비당권파) 후보에게도 같은 의혹이 있다”고 물고 늘어졌다. 동일한 의혹에 대한 반복된 주장을 계속하자 이를 지켜보던 유시민 공동대표는 “그만 좀 하세요”라며 제지하기도 했다.

경기동부연합의 또 다른 실세로 알려진 안동섭 경기도당위원장도 구설에 올랐다. 그는 진상조사보고서에 대한 질의응답에서 “진상보고서에서 당원에 대한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정당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게 아니라 당원 눈높이에 먼저 맞추고 국민 눈높이를 올려서 맞추는 게 맞다”, “부정에도 여러 가지 기준과 상식, 생각이 있는 것”이라고 당권파를 엄호했다. 그는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도 민노당 후보로 경기도지사선거에 출마한 바 있다. 






<진보당 파국 위기>당권파 핵심 이석기, 親北조직 ‘자민통’ 출신

통합진보당(진보당) 당권파가 사수(死守)하고자 하는 이석기 비례대표 2번 당선자는 과거 주체사상파(주사파) 학생운동의 한 분파인 ‘자주민주통일운동그룹(자민통)’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통은 ‘지하사령탑의 지시에 따라 공개적인 대중운동체가 움직이는’ 지하성 강한 민족민주해방(NL)계 학생운동 그룹이다.

이 당선자는 또 경기동부연합을 장악한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인맥의 ‘좌장’이다. 결국 한국외대를 중심으로 한 구 NL 자민통 학생운동그룹이 경기동부연합을 장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구 민주노동당과 현 진보당 당권파를 접수했으며, 민주통합당과의 야권 연대로 대한민국까지 접수한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해진다.

7 일 NL 운동권 출신의 야권 인사들은 “자민통은 NL계열 여러 분파 중에서 특히 ‘지하사령탑이 오더를 내려 공개 대중조직을 움직이는 것’을 조직 관행으로 삼는 곳”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이 당선자는 전국연합의 주요 하부 조직 중 하나인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다. 경기동부연합은 지역적으로 경원대, 한양대 안산, 한국외대 용인, 경희대 수원 캠퍼스 등 경기지역 대학 출신이 주류를 이뤘으며, 이 당선자 역시 한국외대 용인 캠퍼스 82학번이다.

전국연합의 지역조직은 1986년 ‘강철서신’을 통해 주체사상을 수립한 김영환이 1999년 ‘전향’하면서 사실상 와해되는데, 그 와중에 살아남은 게 바로 인천과 경기동부연합이었다. 이 같은 결속력을 바탕으로 자연스레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에 초기 합류했고, 경기동부연합에 광주전남연합 일부 세력이 가세하면서 민노당 권력을 잡았다는 게 정설이다. 일각에서는 경기동부연합 세력이 2003년 노동자와 학생 연대를 중시하는 NL계 비주류인 ‘노학연대선봉대(일명 노선대)’와 연합하면서 급격히 성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이 당선자가 포함된 경기동부연합은 지하조직에 사령탑을 두고, 수면 위에 있는 조직원들에게 ‘오더(지시)’를 내리던 NL 자민통 그룹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동부연합의 핵심사업과 재정을 도맡았던 ‘핵심 실세’인 이 당선자가 비례대표로 나서기 전까지 이 당선자에 대한 정보가 극히 부족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여전히 지하 사령탑 구성과 면면은 알 수 없다는 분석도 많다. 한 운동권 출신 인사는 “인천연합, 울산연합 등 다른 전국연합 지역조직 수장은 대략 드러나는데, 경기동부연합은 워낙 비밀조직이라서 누가 핵심 지도부인지 아무도 모른다”면서 “이석기 당선자가 수장인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동부 연합 출신에 한국외대 본교와 용인캠퍼스 출신이 유난히 많은 것도 특징이다. 정형주 전 민노당 경기도당위원장(84학번), 우위영 진보당 대변인(84학번), 김기창 전 민노당 성남시협의회의장(85학번), 이양수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조직실장(85학번), 윤원석 전 민중의소리 대표(86학번), 윤용배 전 민노총 사무처장(86학번), 편재승 전 민노당 사무부총장(87학번) 등이 모두 한국외대 출신들이다.